힘들어하는 트레이너를 위해.
수련 정보 2008/03/31 17:24 |
운동을 좋아해서 업으로 삶고 계시는 분들께 이 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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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군제대하고 복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생활 동안 제 화두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졸업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을 것인가?(교육대학교 다녔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운동을 계속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학교에 복학해서 다녀보면서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자 였습니다. 그 판단에 의해 제 미래가 결정될 문제라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가 괜히 싫어서 이러는건 아닐까? 운동이 그냥 오랜동안 해왔던 것이라 익숙해져서 그러는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죠"
복학을 해서 학교에 다니면서 제 자신에게 확신을 갖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준비도 됐다는 것을요.
그날로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제 수중에 돈이라곤 작은형의 대학 2학기 등록금으로 어머님께서 준비해두신 120만원 이었습니다. 옷가지를 싼 가방 2개를 양손에 들고 그렇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신림동 산동네 고시원에 방을 얻고 제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습니다. 그 클럽은 외국계 클럽이었는데 외국에 나가진 못하지만 좀 더 새롭고 정확한 시스템을 배우고자 그 클럽에 원서를 냈습니다.
원서를 내고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났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삼일이 삼년처럼 느껴지더군요.
답답해서 클럽에 전화를 걸어 입사원서를 낸 사람인데 왜 연락을 안주시냐고 물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잠깐 확인해 보시는것 같더니 입사가 힘들겠다고 말했죠. 그땐 정말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부모님, 형제들은 물론이고 국가대표 보디빌더로 활동 중이신 선배들도 괜히 고생하지 말고 선생님이라 해라고 말렸었죠. 저는 일자리도 못구하고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한강물에 빠져 죽겠다고 다짐하고 올라온 저에게 남은건 악 밖에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돌하고 무뢰하게도 "어떻게 사람을 보지도 않고 입사 시키고 안시키고 하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렇게 면접 날자를 잡고 면접관님께 목숨을 걸고 일하겠다고 말하고 퍼스널트레이너로 근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3개월여 간의 수습기간동안 생활비가 모자라 새벽에 지하철 2시간 타고 가서 아르바이트하고 끝나면 취직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하루에 잠을 3~4시간 잤나요? 정식 직원이 되고 3년동안 고향집에는 추석, 설 빼고는 가본적이 없습니다. 한달에 28일 일했죠. (클럽 휴관일이 월 2일 이었습니다) 보통 월6~7일 정도 쉴 수 있는 클럽이었지만 저는 휴일 반납하고 일했습니다. 근무시간은 9시간 이었습니다. 3년동안 12시간 이하로 근무한 날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 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와중에 월급이 안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총 6개월이 넘는 기간도안 제가 못받은 급여가 2300 만원 조금 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중간에 퇴사 하셨지만 저는 퇴사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그리고 내가 나가면 내 회원들은 어떻게 하나. 이 고민때문에 빚을 져가며 일을 계속했고 퇴사하신 다른 퍼스널 트레이너들의 회원님들을 인계받아 근무하고..일 참 원없이 했습니다.
근데 정말 클럽이 망해버리더라구요. 그게 작년 10월 중순 이었습니다. 지나온 삼년이 주마등 처럼 스치고 마지막으로 짐을 싸들고 나오는데 괜한 눈물만 흐르더군요. 금요일에 클럽이 망했는데 주말동안 마음을 추스리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트레이너란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힘들고 아픈 기억도 있었지만 그것이 트레이닝을 하면서 생긴 문제라기 보다는 회사생활 하면서 야기된 문제이니 제가 트레이너란 직업을 그만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부유하게 시작한것도 아니고 옷가방 2개들고 서울 올라왔고 회사 망하고 달라진 점이라야 옷가방이 조금 늘었다는 것과 못받은 돈 2300과 생활비로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낸 빚 700정도 이니...죽기야 하겠냐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다시 시작한지 6개월여...여러 고객님들의 도움으로 부채를 다 청산 했습니다. 약소하지만 어머님께 보험도 들어 드리고 있구요. 저보다 힘들게 트레이너 생활 하시고 계신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나 저나 공통점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지금 현재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클럽의 사주들이 문제 입니까?
물론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린 아직 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업계의 시스템을 바꾸고 개선시키는데 일조하면 될 것입니다.
미국처럼 대우받지 못하는것이 문제입니까?
과연 미국의 트레이너처럼 전문성있고 자기 개발하는 트레이너는 몇이나 될까요?
저나 이 글을 읽으시는 님과 같이 시작하는 트레이너들이 힘을 내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행위를 하면서 행복한가?란 질문을 해보시고 스스로 답하신 다음 그 답대로 행하시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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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군제대하고 복학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군생활 동안 제 화두는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졸업해서 안정된 직장을 얻을 것인가?(교육대학교 다녔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운동을 계속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학교에 복학해서 다녀보면서 진정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판단하자 였습니다. 그 판단에 의해 제 미래가 결정될 문제라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학교 공부가 괜히 싫어서 이러는건 아닐까? 운동이 그냥 오랜동안 해왔던 것이라 익숙해져서 그러는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떠올랐죠"
복학을 해서 학교에 다니면서 제 자신에게 확신을 갖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그것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준비도 됐다는 것을요.
그날로 휴학계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제 수중에 돈이라곤 작은형의 대학 2학기 등록금으로 어머님께서 준비해두신 120만원 이었습니다. 옷가지를 싼 가방 2개를 양손에 들고 그렇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신림동 산동네 고시원에 방을 얻고 제가 들어가고 싶은 회사에 입사 원서를 냈습니다. 그 클럽은 외국계 클럽이었는데 외국에 나가진 못하지만 좀 더 새롭고 정확한 시스템을 배우고자 그 클럽에 원서를 냈습니다.
원서를 내고 하루, 이틀, 삼일이 지났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 삼일이 삼년처럼 느껴지더군요.
답답해서 클럽에 전화를 걸어 입사원서를 낸 사람인데 왜 연락을 안주시냐고 물었습니다. 전화를 받으신 분은 잠깐 확인해 보시는것 같더니 입사가 힘들겠다고 말했죠. 그땐 정말 절박한 심정이었습니다. 부모님, 형제들은 물론이고 국가대표 보디빌더로 활동 중이신 선배들도 괜히 고생하지 말고 선생님이라 해라고 말렸었죠. 저는 일자리도 못구하고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한강물에 빠져 죽겠다고 다짐하고 올라온 저에게 남은건 악 밖에 없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당돌하고 무뢰하게도 "어떻게 사람을 보지도 않고 입사 시키고 안시키고 하냐"고 대들었습니다. 그렇게 면접 날자를 잡고 면접관님께 목숨을 걸고 일하겠다고 말하고 퍼스널트레이너로 근무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3개월여 간의 수습기간동안 생활비가 모자라 새벽에 지하철 2시간 타고 가서 아르바이트하고 끝나면 취직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하루에 잠을 3~4시간 잤나요? 정식 직원이 되고 3년동안 고향집에는 추석, 설 빼고는 가본적이 없습니다. 한달에 28일 일했죠. (클럽 휴관일이 월 2일 이었습니다) 보통 월6~7일 정도 쉴 수 있는 클럽이었지만 저는 휴일 반납하고 일했습니다. 근무시간은 9시간 이었습니다. 3년동안 12시간 이하로 근무한 날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 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와중에 월급이 안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총 6개월이 넘는 기간도안 제가 못받은 급여가 2300 만원 조금 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중간에 퇴사 하셨지만 저는 퇴사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들어온 회사인데..그리고 내가 나가면 내 회원들은 어떻게 하나. 이 고민때문에 빚을 져가며 일을 계속했고 퇴사하신 다른 퍼스널 트레이너들의 회원님들을 인계받아 근무하고..일 참 원없이 했습니다.
근데 정말 클럽이 망해버리더라구요. 그게 작년 10월 중순 이었습니다. 지나온 삼년이 주마등 처럼 스치고 마지막으로 짐을 싸들고 나오는데 괜한 눈물만 흐르더군요. 금요일에 클럽이 망했는데 주말동안 마음을 추스리고 다음주 월요일부터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트레이너란 일을 하면서 여러가지 힘들고 아픈 기억도 있었지만 그것이 트레이닝을 하면서 생긴 문제라기 보다는 회사생활 하면서 야기된 문제이니 제가 트레이너란 직업을 그만둘 하등의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부유하게 시작한것도 아니고 옷가방 2개들고 서울 올라왔고 회사 망하고 달라진 점이라야 옷가방이 조금 늘었다는 것과 못받은 돈 2300과 생활비로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낸 빚 700정도 이니...죽기야 하겠냐고 다시 시작했습니다. 프리랜서 트레이너로 다시 시작한지 6개월여...여러 고객님들의 도움으로 부채를 다 청산 했습니다. 약소하지만 어머님께 보험도 들어 드리고 있구요. 저보다 힘들게 트레이너 생활 하시고 계신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나 저나 공통점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지금 현재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걸로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클럽의 사주들이 문제 입니까?
물론 문제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린 아직 젊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업계의 시스템을 바꾸고 개선시키는데 일조하면 될 것입니다.
미국처럼 대우받지 못하는것이 문제입니까?
과연 미국의 트레이너처럼 전문성있고 자기 개발하는 트레이너는 몇이나 될까요?
저나 이 글을 읽으시는 님과 같이 시작하는 트레이너들이 힘을 내고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행위를 하면서 행복한가?란 질문을 해보시고 스스로 답하신 다음 그 답대로 행하시면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그 행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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